“그림책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마임이스트 유홍영, 40여년의 몸짓으로 그림책을 읽다

본 인터뷰는 2026년 7월 그림책 작가 유진, 별여울과 연구자 이승희가 진행하였습니다.

콜롬비아 몸의 학교 ⓒ유홍영

평일 오후 대학로의 한 커피숍 테이블 맞은 편에 앉은 유홍영 연출가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해맑은 미소에서 자신의 일과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어린이극 하시는 분들은 인상부터 다르다는 느낌이랄까. 기분 좋은 예감과 설레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극단 사다리의 창단 멤버, 춘천마임축제를 만든 2세대 마임이스트, 그리고 국립극단에서 어린이·청소년극을 만들어 온 연출가. 이력만 보면 위엄 있는 그의 모습은 이내 편안하게 느껴졌고, 두 시간 남짓한 대화 내내 그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대신 계속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라고. 그 질문은 그림책 작가들을 향한 것이기도 했고, 결국 우리 모두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우울했던 청소년기, 연극 때문에 공부하게 되다

이야기는 뜻밖에도 우울한 십 대에서 시작된다.

“중·고등학교 때 굉장히 우울한 학생이었어요. 학교에서 잠만 자고, 공부를 전혀 안 하고.”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 여덟 살 위 형은 동생을 대학에 보내겠다며 자신은 공고를 택했다. 정작 공부를 잘했던 건 형이었다. 형은 수줍음 많은 동생을 바꿔놓겠다며 교회에도 보내고, 이런저런 활동에 밀어 넣고, 때리기도 했다. 그는 형을 몹시 싫어했다.

 

“그런데 연극을 하면서, 연극이라는 게 다른 사람의 삶을 공부하는 분야잖아요.
형이 왜 그렇게 나를 때렸는지, 왜 억압했는지를 입장 바꿔 생각해보니까 삶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공부하기 싫어서 들어간 연극과였다. 그런데 연극 때문에 공부를 하게 됐다. 연극학개론 시간, 교수가 말했다. 연기에는 언어를 통한 연기가 있고, 말없이 하는 연기가 있다고. 그때 중학교 2학년 무렵 TV 해외명작극장에서 보았던 프랑스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말없이 몸만 움직이는데 아름다웠던 기억이었다. 한쪽만 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그는 마임을 독학하기 시작했다.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를 찾아보고, 미국·프랑스·독일 문화원을 드나들며 해외 공연 자료를 뒤졌다. 그 때 유진규 선배와 함께 공부할 사람들을 모아 마임협의회를 만들었고, 그 협의회는 결국 춘천마임축제의 시발점이 되었다. 같은 해 1989년에 춘천마임축제와 춘천인형극제가 시작되었는데, 그는 지금도 인형극제에 활발히 관여하고 있다.

Q. 어린이 곁을 오랫동안 떠나지 못하게 한 가장 근원적인 힘은 무엇이었나요?

연극을 전공하면서 저도 처음엔 성인극 위주로 활동했어요. 그러다 대학로에서 우연히 어린이 연극 작업에 스텝으로 참여하게 됐죠. 그런데 그때 연극계 분위기가, 말로는 어린이·청소년이 중요하다면서 실제로는 어린이 연극으로 돈을 벌어 성인극에 투자하는 식이었어요. 그게 굉장히 모순되게 느껴졌어요. 그러다 성인극과 아동극을 나누지 말고 온 가족이 함께 보는 ‘가족극장’ 개념을 고민하게 됐고, 그 방향으로 극단 사다리를 만들면서 어린이 전문 연극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거죠.

유홍영 연출가 ⓒ그림책협회

‘사다리’라는 이름

1988년 12월,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어린이 전문 극단을 하나 만들자”며 사람들이 모여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

“사다리는 아래에서 위를 연결하잖아요.
어린이와 어른의 마음을 연결하고, 계층과 계층을,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자. 그런 마음으로 붙인 이름이에요.”

 

극단 사다리, 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 사다리움직임연구소. 한때는 전체가 모이면 100여 명이 함께 활동했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방학마다 전석 매진을 기록했고, 그 힘으로 투자를 받아 대학로에 사다리아트센터까지 지었다. 어린이 전문 극단으로서 가장 사랑받던 1990~2000년대였다. 하지만 그 시절의 성취보다 그가 더 자주 입에 올린 건 실패 쪽이었다.

 

“저만큼 실패를 많이 한 사람도 없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실패를 통해서 더 건강해졌어요.”

Q.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평가나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저는 누가 옳고 그르다를 판단하기보다, 각자가 세상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펼쳐놓고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실패를 저만큼 많이 한 사람도 없을 거예요. 그런데 그 실패를 통해 더 건강해졌어요. 그러니 젊은 친구들에게도 말해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연극은 종합예술인데, 왜 연극으로만 공부하지?”

그림 쪽에 관심이 생긴 결정적 계기는 스승의 한마디였다.

“교수님이 자꾸 물으셨어요. 연극이 뭐니?
종합예술이라고 대답하면, 그런데 요즘은 연극을 연극으로만 공부하네, 하시는 거예요.
그 안에 그림과 문학과 음악과 춤이 다 들어 있어서 종합예술인 건데. 그 말이 충격이었어요.”

 

그때부터 다른 분야를 파기 시작했다. 예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니 결국 미술사였다. 그림은 글보다 앞선, 가장 원초적인 기록 문화였다.

 

“현대무용의 어머니라는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이 발레의 토슈즈를 벗어 던지고,
그리스 화병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현대무용을 착상했다잖아요.
그림은 고정돼 있지만, 원초적인 요소가 거기 다 숨어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몽마르트르 언덕의 예술가들 이야기도 그를 자극했다. 피카소(Pablo Picasso)나 장 콕토(Jean Cocteau)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만들고, 끊임없이 서로를 넘나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다 따로따로 놀더라고요.”

 

이후 그는 직접 다양한 예술 현장을 찾아다녔다. 공연으로는 돈이 안 되니 극장 스태프 일을 하고, 사물놀이가 탄생하던 자리에서도 스태프로 참여했고, 미술 전시장에 찾아가 “여기서 이런 움직임을 해보면 어떨까요” 하고 물었다. 호암아트홀 개관 무렵 미술관 로비에서 퍼포먼스를 한 것도 그렇게 시작된 일이었다.

 

“대우를 잘 받으셨어요?”라는 질문에 그는 웃었다. “그때는 공연만 하게 해줘도 감사한 시절이었어요.”

 

그는 그림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예술 분야를 넘나들던 어느 날 이중섭의 그림에서 공연의 영감을 얻게 되었다.

 

“화가 이중섭이 힘들고 어렵던 시대를 살면서 전쟁 때문에 가족과 헤어졌는데, 짧은 시간이지만 제주도 피난 시절에 그 네 가족이 조그마한 방 안에서 놀았던 거에요.
그래서 그분의 그림을 보면 그 안에 ‘그리움’과 ‘엄청난 행복’이 숨어 있어요. 가족이 헤어져서 삶은 너무 괴로울 텐데요.
그러니까 모든 예술은 삶이 불행하더라도 그 한순간의 기억, 그 희망이 우리한테 또 다른 상상을 주는 거에요.
어떤 분은 굉장히 풍요롭게 사는데도 그림이 굉장히 괴기스럽고 충격을 주는 면이 있는데 말이죠.
제가 개인적으로 이중섭 화가의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그렇게 힘듦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행복을 찾았다는 거에요.”

<중섭, 빛깔있는 꿈> 공연 장면 ⓒ유홍영

그는 우리 사회가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정서적으로는 빈곤함을 겪는 현실을 안타까워 한다. 물질의 풍요로움이 행복을 주는 게 아니라 가족 간에 온몸으로 만나고 그 순간에 서로 사랑을 나누면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시대적인 비교 속에서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가 예술감독 및 연출을 맡은 비언어오브제극 <중섭, 빛깔있는 꿈>은 그렇게 가족극으로 재탄생 되었다.

그렇게 그는 풍요로운데, 왜 우리는 불행한가를 물었다.

 

“어렸을 때는 크레파스 하나 없어서 남한테 빌려 쓰기도 했는데, 지금은 넘쳐나잖아요.
그런데 왜 우리는 풍요로운데 풍요롭지 못하지? 이게 지금 제 질문이에요. 잘하고 싶으면 즐기면 되거든요.
그런데 잘하고 싶다면서 즐기지를 못해요. 그러니까 괴로운 거죠. 잘하고 있는데도.”

그림책이 어린이만의 것이 아니라는 발견

그림책과의 만남은 극단 창단 멤버인 임정미 선생님의 지하실에서 시작됐다. 프랑스에서 인형극을 공부한 분인데, 그녀는 프랑스 그림책을 두 아이에게 계속 읽어주었다.

“아이들이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프랑스어로 읽어주고 한국말로 읽어주기도 하고.
그 모습이 저한테 너무 아름다웠어요.”

 

1990년, 독일 쾰른 축제에 작품이 초청받으면서 유럽에 나갈 기회가 생겼을 때 그가 제일 먼저 간 곳은 서점이었다.

 

“거기서 알게 된 거예요. 그림책이 어린이만을 위한 책이 아니구나.
어른들도 좋아하는 그림책이 이렇게 많구나.”

 

그러나 돌아와 본 국내 상황은 달랐다. 깊이보다 판매를 먼저 생각하는 구조였다. 그는 그림책 분야와 교류도 해봤지만 결국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까로 귀결되고, 투자는 안 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걸 지켜봤다. 그리고는 방법을 바꿨다. 시장이 아니라 작가를 만나기로.

국립극단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는 ‘한 여름밤의 작은 극장’ 프로젝트를 5년간 진행했다. 결혼과 육아로 경력이 끊긴 여성 배우들이 연출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배우가 아니라 스스로 독립하는 예술가로서의 배우를 위한 자리였다. 그 무대에 그림책 작가들의 워크숍 결과물을 올렸다. 국내 공연예술계에는 없던 작업이었다.

 

“어떤 분은 굉장히 반가워하셨고, 어떤 분들은 굉장히 싫어하셨죠.” 그는 담담하게 덧붙였다.

Q. 마임이 언어를 지우고 신체의 움직임과 관객의 상상력으로 서사를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그림이 서사의 큰 축이 되는 그림책과도 공통점이 많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림책과 마임, 이 두 장르가 닮은 지점은 어디라고 보시나요?

그림책은 이미지잖아요.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과 함께, 부족한 언어를 절제해서 써나가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지에 문학, 음악, 춤이 함축되어 있고, 연극에도 이 모든 게 다 녹아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면서 미술사를 공부하게 됐는데, 그림책 한 장면 안에도 이미 소리, 냄새, 시간이 다 숨어 있는 거예요. 그 지점이 닮은 게 아닐까요.

유홍영 연출가 ⓒ그림책협회

이어서 인터뷰에 함께 참여한 유진, 별여울 작가의 그림책 ‘몸짓’ 워크숍 경험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내 책인데, 나보다 더 잘 아시는 것 같았어요”

‘몸짓’ 워크숍 현장을 목격한 유진 작가의 증언은 생생했다.

“그림 한 장을 만들 때 작가는 엄청나게 고민하고 실패하고 연구해서, 최선의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러니까 그 그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고 믿죠. 그런데 선생님이 그 장면을 표현해 보라고 하셨을 때, 대부분 그냥 직관적으로 보이는 것만 표현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그 장면에서 나오는 소리, 음향, 그런 걸 순식간에 몸으로 꺼내놓으시는 거예요.”

 

작가들은 다들 깜짝 놀랐다. 내가 만든 한 장면에 시간이 있고, 냄새가 있고, 소리가 있고, 바람이 있고, 분위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는 것이다. “내가 만든 장면인데 정작 나보다 더 잘 표현하시는 것 같고, 더 감동적이라고들 했어요.”

한편 별여울 작가는 자기 책을 무대에 올리며 겪은 혼란을 이야기했다.

 

“그림책은 열여섯 장면인데, 무대에 올리면 열여섯 장면이 아닌 거예요. 그게 처음엔 충격이었어요.
책에 없는 앞 장면을 상상해서 넣기도 하고, 뒷 장면도 넣고. 장면에 함축해 놓은 걸 다시 풀어내는 거죠.”

 

“제 그림은 거의 평면인데, 제 캐릭터와 배경을 몸짓 무대에 맞게 입체로 옮기면서 상상을 해야하는 공간과 압축된 여백을 풀어가는 과정이 정말 어려웠어요. 제가 현재 하고 있는 그림책 <호호빵빵 달콤한 인생> 몸짓 공연의 경우, 사실 애초에 무대화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해서 저는 그대로만 하면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실제 무대화 과정에서 공연 무대라는 것이 제 생각보다 훨씬 더 입체적이고 캐릭터나 소품, 장면 등 여러 측면에서 더 풍성해야 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나요. 제 상상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상상력이 큰 영역이었죠.”

 

그림책 몸짓 공연은 그림책을 그대로 옮기는 게 아니고 또 하나의 세계를 공연의 형식에 맞게 창조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고민이 깊었지만 무대가 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다음 작업에 반영되었다. 이제 작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이 장면이 공연이 되면 어떨까’를 상상한다고 했다.

또 유진 작가는 “선생님이 캐릭터가 되어 직접 걸어보고 말해보며 움직여 보라고 하시는데, 내가 그림책을 만들면서 이 친구를 한 번도 흉내 내 본 적이 없구나라는 생각에 깜짝 놀랐어요. 요즘엔 작업실에 혼자 있으면서도 일어나서 해봐요. 부끄럽긴 한데.”라고 말했다.

그림책 몸짓 ⓒ차승자

유홍영 연출가는 여기서 자신의 핵심 명제를 꺼낸다.

 

“본인이 해놓고도 그걸 모르는 거예요. 없는 감각이 아니에요. 이미 그 감각을 갖고 있는데, 우리 교육이 그걸 평면화시켜요.”

“전문가가 될수록 오히려 자기가 가진 100%의 능력 중 10%밖에 발휘하지 못하고 두려워하게 되는 거죠.
권윤덕 선생님 같은 경우는 ‘나는 이렇게 해봤더니 좋더라’하며 스스로 먼저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셨어요.
그게 젊은 작가들에게 자연스러운 자극이 됐죠.”

 

대화는 자연스럽게 교육 이야기로 넘어갔다. 준비된 질문지가 필요 없을 만큼, 그는 ‘교육’을 이야기했다. 애초에 1988년 어린이를 위해 공연하는 “교육극단 사다리”로 출발하였고, 연극을 효율적인 교육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노력했던 그였다.

아이가 손을 들고 말했다, “슬펐어요”

극단 사다리를 만들고 유치원을 찾아가는 공연을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공연이 끝나면 늘 아이들과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했다.

“어땠어요, 하고 물었는데 갑자기 한 아이가 손을 드는 거예요. 거기 선생님들이 다 놀라셨어요.
말 한마디 안 하던 아이였거든요. 그런데 그 아이의 첫마디가 ‘슬펐어요’였어요.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면 소름이 끼쳐요.”

 

그가 강조하는 건 ‘재미’와 ‘감동’의 차이다.

 

“공연 끝나고 나오자마자 어떤 부모들은 바로 교육을 시작해요. 잘 봤니, 그림 그려라, 감상문 써라.
온전히 느껴야 되는데. 감각이 온몸으로 살아나면 감동을 받고, 그러면 생각이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서 정리가 안 되는 게 당연해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또 다른 씨앗이 되는 건데, 우리는 늘 급해요. 그리고 강압적인 질문이 생각을 평면으로 만들어요.
엄마 아빠가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얼마나 재미있었어?’거든요. 모든 작품을 재미로만 따지는 거죠. 그런데 슬픔은 재미와 달라요.”

 

감동은 미학적으로 카타르시스이고 정화작용이며, 정화된 사람만이 그 느낌을 다시 전달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예술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론적으로 이미 다 배워요. 그런데 그걸 체험하고 생활하는 건 등한시하죠. 저도 큰 무대에 다 서봤고 대가들과 작업도 해봤는데, 머리로는 하는데 마음이 몽글몽글하지 않더라고요.”

Q. 예술가로서, 또 교육자로서 가장 자주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우리는 이렇게 풍요로운 사회에 살고 있는데 왜 풍요롭지 못한가’ 하는 질문이에요. 잘하고 싶으면 즐기면 돼요. 그런데 잘하고 싶다면서 즐기지 못하니까 괴로운 거죠. 아이들은 아침 햇살에 온몸으로 반응하고, 긴장하면 자기도 모르게 몸을 털어요. 그런 원초적인 감각을 우리는 ‘얌전해야 한다’는 교육으로 억누르면서 아이를 오히려 위축시켜요. 좋은 학교, 좋은 환경은 그림을 그린 만큼 춤도 추게 하고, 끊임없이 교류하게 해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나뉘고, 전문화라는 이름으로 갇혀요.

잊은 게 아니라, 이미 갖고 있다

교육에 대한 그의 생각이 쉴 새 없이 나오다가 그림책 작가들에게 줄 실용적인 조언을 묻자 그의 답은 명료했다.

“일단 움직여라! 움직이라고 하면 거부감부터 들어요. 내가 안 해봤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움직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시작된 거예요. 다만 교육받고 직업이 형성되면서 그 움직임이 전문화된 거죠.
계속 창조적으로 전환되는 분들은 시간이 갈수록 움직임이 넓어지고 풍요로워져요.
반대로 목표 때문에 좁아지는 분들은 움직임이 제한되면서 건강이 비틀어지고요.”

 

그 풍요로운 요소가 바탕이 될 때 비로소 깊이와 몰입이 가능하다는 걸 어릴 때부터 가르치기 때문에, 그 학생들은 자기가 좁아지는 것에 대해 몸의 경계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없었던 게 아니에요. 이미 우리는 다 갖고 있었는데, 교육에 의해서 스스로 평면화시킨 거예요.
그러니까 어릴 때의 천연성, 놀이성을 다시 발견해야 돼요. 갖고 있는 걸 잊지 말아야 돼요.”

“작업실에 앉기 전에 한 번 아이가 돼야겠네요”라는 유진 작가의 말에 그는 곧바로 답했다.
“당연하죠. 아이들은 아침에 햇살을 보면 온몸으로 반응해요.”

콜롬비아 몸의 학교 ⓒ유홍영

평가하지 말고, 펼쳐놓자

인터뷰 후반, 비평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평가와 비평을 분명히 갈랐다.

“평가는 절대 도움이 안 돼요. 세계적인 프로그램을 하는 분들은 그건 독이라고 이미 규정했어요.
평가하지 말고 올바른 피드백, 연극 놀이식으로 하는 사이드 코칭을 하라는 거죠. 놀이에서는 이렇게 하면 재미없어지잖아요.
그러면 바로 다른 피드백이 와요. ‘그럼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널뛰기처럼 주고받기가 돼야 하는데, 여기서 평가를 하면 경직되고 감각이 사라져요.”

 

그렇다고 비평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비평과 비판은 달라요. 좋은 비평 문화는 문화를 더 형성시켜요. 예전엔 좋은 비평 하나가 신문에 실리면 그 작품이 매진되던 시절도 있었어요.”

그가 정말 안타까워한 건 단절이었다. 그를 가르쳤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는데 거론되지 않는다는 것, 사건 하나로 대단한 예술가가 한순간에 지워진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흐름이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저는 어떤 게 옳다는 말을 함부로 못 해요. 정답은 없어요.
다만 당신은 이 세상에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펼쳐놓고 이야기하자는 거예요.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당신은 이렇게 얘기하고 싶군요’ 하고요.”

생의 움직이는 극장

이제 그는 극단 사다리의 일을 후배들에게 넘겼다. 국립극단에서 처음으로 월급쟁이 생활도 해봤다. 그리고 지금, 자기만의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이름은 ‘생의 움직이는 극장’이다.

‘생의 움직이는 극장’의 뿌리에도 어린 시절의 이미지가 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 엄마가 이불 홑청을 쫙 펼쳐놓으면, 그게 그에게는 극장이었다. 엄마의 치마 속에 들어가던 기억. 그 이미지는 극단 사다리의 이중섭 그림 속 이야기의 ‘파도’로 이어지기도 했다.

 

“혼자 만드는 시대가 아니에요. 같이 만드는 거예요.
‘어디서 합니다’ 하면 같이 와서 즐기고, 같이 밥 먹고, 그런 프로그램으로 구상하고 있어요.”

 

덧붙여 그림책협회의 고민을 꺼냈다. 장르의 독립을 위해 모였지만 혼자 작업하는 직업적 특성 탓인지 잘 뭉쳐지지 않는 면이 있는 것 같다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명료했다.

 

“개인적으로는 능력이 미비해도, 힘을 모으면 굉장히 다양한 일이 벌어져요.”

 

선물로 받은 태블릿으로 그는 요즘 그림을 그린다. 김점선처럼 잊혀가는 작가들을 기억하며 따라 그리기도 한다. “연극의 첫 출발이 모방이잖아요. 뭘 보고 내 식으로 하는 것.” 그림에 붙인 이름은 ‘자파리’. 소꿉놀이, 쓸데없는 짓, 장난이라는 뜻의 제주말이다.

 

“돈 되는 작업이 아니라, 내가 즐거운 작업을 할 때 그 즐거움을 같이 하자는 주의예요.”

 

언제 은퇴하실 거냐는 물음에 그는 웃었다.

 

“은퇴는 이 세상 떠날 때 하는 거죠.”

선생님께 그림책은 무엇입니까

인터뷰 말미, 공통 질문이 던져졌다. 선생님에게 그림책은 무엇입니까?

“그림책은 저한테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었어요. 예전에는 창문이었는데, 지금은 그 창문이 커다란 출입구처럼 됐어요.
그리고 연극은 이미 제 삶의 커다란 변화죠. 저를 올바르게 살게 하는 또 다른 삶이에요.”

 

그는 ‘몸’이라는 우리말에 대해 이야기했다. 몸이라는 단어 안에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뜻이 숨어 있다고. 하늘의 모든 것과 땅의 모든 것이 모아져 있는 것이 몸이라고. 그가 워크숍을 할 때마다 꼭 꺼내는 이야기다.

 

“그림책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었어요.”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유진 작가가 나지막이 자신의 롤모델 이야기를 꺼냈다. 데뷔 전, 자료를 찾다가 본 외국 인형극 축제의 한 장면이었다. 자전거 뒤에 이야기 상자를 싣고 온 할아버지가 종이 인형으로 공연을 하고, 아이들이 앞에 모여 앉아 행복하게 그걸 보고 있었다.

 

“저게 나의 마지막 롤모델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나는 이야기꾼일 뿐이고, 어디 길거리에 자전거로 이야기 상자를 갖고 온 사람이다.
그 정신으로 그림책을 해야 한다고 계속 리마인드 하거든요.”

 

그리고 작가는 덧붙였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를 오늘 실제로 뵌 것 같아요.”

 

‘미술사가 예술사’라는 깨우침 속에서 연극과 그림책의 접합점을 찾은 유홍영 연출가의 40여 년 예술 인생과 ‘이야기꾼 할아버지’를 꿈꾸는 유진 작가의 모습 속에서 그림책의 다정한 미래가 그려진다. 예술가 스스로 맘껏 즐기며 펼쳐 놓으면 아이와 어른 모두 함께 즐거운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다.

별여울 작가, 유홍영 연출가, 이승희 연구자, 유진 작가 ⓒ그림책협회

* 이승희 harmony_lab@naver.com